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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흥덕사지 금당의 보수 작업을 마치자, 아버지는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할아버지의 유품을 밖으로 끌어내라고 성화를 부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이른 아침부터 창고에 들어가 케케묵은 먼지를 닦아내며, 단청칠 도구를 밖으로 꺼냈다. 금세 좁은 마당 한가득 할아버지의 짐들과 칠통이 수북이 쌓였다.달루의 우담바라는 지고 없었다. 상처의 딱지처럼 거무스레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아버지는 물건 보관 방법을 설명하다가, 찾아든 가슴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자리를 뜨자, 어떻게 물건들을 분류해야 할지 난감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그만 버렸으면 했다. 털이 닳아빠진 붓과 딱딱하게 굳은 아교와 분채 가루가 든 채기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문득 순천이 생각이 났다. 아뿔싸, 검은 양복을 만났던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핸드폰을 점퍼에서 꺼내 버튼을 눌렀다. 곧 순천이의 중저음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수박씨가 전화를 다 했네!”순천이는 나를 수박씨라고 불렀다. 아랫입술 아래 수박씨만 한 큰 점 때문이다.“오줌싸개야, 잘 있었냐! 얼마 전, 우석이가 청주 탄금대에서 수연이 소식을 듣고 왔어. 그런데 수연이에게 남자도 있고, 중학생쯤 되는 아들도 있다고 들었어. 잘살고 있다면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을 것 같고.”“그동안 미친놈처럼 수연이를 찾아다녔잖아. 그러니까 꼭 한 번은 만나봐야지. 정말 잘살고 있는지 확인을 해봐야지.”“그래야겠지?”“청주에 볼일이 있어서 바로 올라갈 거야. 그때 우리 만나서 의논하자.”“순천아! 깜박했는데 말이야. 네 동생과 비슷한 사람을 전재미 마을에서 만났어. 가족을 찾는다더라? 혹시 몰라 번호는 받아뒀다.”“그 애, 우리 집 막둥이 맞다. 혹시 학교 선생이라고 하지 않던?”“맞아 그렇게 말했어. 잔치국수와 막걸리도 얻어먹었어.

문화 | 이경 | 2023-03-04 16:45

7우석이를 만나고 돌아온 후,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충주 탄금대로를 향해 쿨럭대는 트럭을 몰아야 했다. 하지만 우석이 말대로 무턱대고 찾아간다는 게 옳은 일인지 잠시 망설여졌다. 더구나 그녀의 곁에 남자도 있고, 중학생쯤 되는 아들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정이 쉽지가 않았다.어영부영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수술을 받았던 병원에 들러 정기검진하고 진통제를 수북이 타왔다. 담당 주치의는 아버지에게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진통을 좀 줄여가며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단번에 잘라 말했다.‘그럴 돈도 없지만, 정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병원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며 죽은 송장처럼 지낼 수는 없다. 예전보다 더 강한 진통제나 처방해달라.’그 순간, 나는 딱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 보증금을 강미에게 줘버리고 빈 몸으로 나왔기에, 지갑에 든 이백만 원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겨우 병원에 들러 강력한 진통제만 받아와 하루하루를 죽음 향해 떠밀려가고 있는 형편이었다.박 씨 아저씨가 이른 새벽에 핸드폰을 걸어왔다. 직지축제 개막 전에 흥덕사지 금당 보수 작업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연장통을 챙겨 사무실로 나갔다.아버지 병원비라도 마련할 겸, 아저씨 말에 순순히 따랐다. 금당에서의 보수 작업은 규모가 점점 커졌다. 기와를 뜯고 내부를 보자, 받치고 있던 서까래가 물에 젖어 있었다. 지붕 보수 팀이 먼저 손을 본 다음, 금당 뒤쪽 모든 면의 처마 단청과 얼룩진 아홉 번째 십우도를 복원하기로 했다. 아저씨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돌았다. 갑자기 걸음새도 빨라졌다. 70대 후반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사다리를 탔다.관리자의 사무실에 임시로 짐을 풀었다. 책상에 앉아 예전에 쓰던 단청 문양 첩을 꺼내 크기와 배열에 맞게 본을 그렸다. 그 일감은 모두 내가 맡아 하기로 했다. 잡고 있던 연필 끝이 흔들리더니 살짝 빗겨나갔다. 그런데도

문화 | 이경 | 2023-03-04 16:42

- 부회장에 최순희, 김정일, 원정미, 감사에 정태현, 윤여봉 당선 -(사)한국영화인총연합회 대전광역시지회 제17대 회장에 김홍현 영화‧연극 연출가가 선출됐다. 부회장은 최순희(배우, 가수), 김정일(대전영화사랑모임 대표), 원정미(원엔터테인먼트 대표)씨가, 감사에는 정태현(원기획 대표), 윤여봉(채널원 대표)씨가 선출됐다.대전영화인협회 임원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일 대림한정식(대전 중구 선화동)에서 재적대의원 54명 중 32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총회를 열고 임원선거를 진행했다. 이날 회장, 부회장, 감사는 만장일치 박수로 선출하여 지역 영상산업 발전을 이끌어갈 새 임원이 됐다.이번 선거로 선출된 신임 김홍현 회장 및 부회장, 감사의 임기는 2026년 2월까지로 3년간 대전영화인협회를 이끌어 간다.김 회장은 당선 소감을 통해 "50주년을 맞이한 대전영화인협회의 위상과 예술인의 권위를 위해 노력한 이전 회장과, 회원 모두에게 감사하다"라며 “대전 시민의 행복과 회원들의 영화제작 활동 지원 그리고 대전영화인협회가 화합하고 성장하도록 열심히 뛰겠다"고 강조했다.한편, 이임하는 성낙원 회장은 지난 2월 24일 한국예총 대전광역시연합회장에 당선되어 대전예술계의 수장으로 4년간 임기를 시작했다.

문화 | 손혜철 | 2023-03-04 16:20

저자 이상원출판사 서평당신이 제약영업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업무지침서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끊임없이 격렬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자본주의 경쟁사회 속에서 인류의 생산력과 기술력이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상품들은 어느 정도 균질한 품질을 갖추게 되었고, 이에 따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품질을 갖추는 것 이상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그렇기에 자사의 상품을 알리고 고객들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업인들의 역할은 바야흐로 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이 책 『꽁꽁 숨겨 놓은 제약영업의 비밀』은 ‘제약영업인’으로서 실전 필드에 뛰어든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업무의 기본과 실전을 담고 있는 업무지침서이다. 종근당, 대웅제약 등 굵직굵직한 제약회사들을 거치며 주목할 만한 실적을 쌓은 바 있는 이상원 저자는 오랜 실무 경험으로 쌓은 지식에 기반하여 제약영업에 뛰어든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의약품 시장의 구조와 작동 원리, 병원 영업에 필요한 실전 기본기, 병원의 신약 랜딩 관련 기본 지식과 시스템 이해, 의약품 입찰의 이해, 제약영업의 업무코칭과 ‘일을 잘하는 법’ 등을 차근차근 들려 준다.먼저 PART 1, ‘의약품 시장과 영업에 대한 이해’는 의약품 시장이 갖는 특징, 의약품 영업이라는 업무가 가지는 특징, 영업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강점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PART 2, ‘병원 영업의 기본기와 고객관리 방법’은 병원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접근하여 충성고객을 만드는 가장 실전적인 제약영업의 노하우를 담고 있다. 특히 서울대병원, 전남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가천길병원 등 여러 대형 병원들의 의약품 구매와 상정에 관한 주요 일정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한 자료는 이 책을 활용하는 제약영

문화 | 손혜철 | 2023-03-03 10:42

석오이동녕선생선양회 김중영 공동대표 겸 연수원장이 지난 2일 천안시청 봉서홀에서 천안시 월례모임에 참석한 천안시청공무원(1천여명)을 대상으로 천안출신 독립운동가 석오이동녕선생 바로알기 특강을 실시했다.이날 특강에서 김원장은 “석오이동녕선생은 구한말 충남 천안의 양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교육자로서 언론인으로서 애국계몽운동과 국권회복운동, 독립운동 등 나라사랑실천에 앞장서 오신분이다” 면서 “우리나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제를 선포하여,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주춧돌을 놓으신 의회 민주주의의 선각자였다”고 강조했다.특히 “이동녕선생은 독립협회 활동, 신민회 활동 등을 통해 정립된 민주공화적 사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전에 반드시 임시의정원을 구성해 국호와 임시헌장이 제정돼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이를 관철시킨분”이라고 밝혔다.또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성격은 첫째로 임시정부 시기의 대한민국을 세운 제헌의회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입법부로서 헌법을 제정했다는 점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토의와 의결을 거쳐 민주적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세계사적으로도 식민지 해방 운동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부조직을 가지고 대외 항쟁을 벌인 거의 유일한 정부다”고 강조했다.덧붙여 “석오이동녕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등 3차례의 의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석 네차례,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령 등 5차례의 국가수반을 지내며 독립투쟁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하시며 대한민국 건국 활동에 지대한 공을 세웠는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김원장은 “이젠 이동녕선생에 대해 제대로 된 대우와 이름을 찾아 줄 때가 되었다”면서 “선양회와 함께 천안시가 앞장서서 서훈1등급 상향과 함께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지도

문화 | 손혜철 | 2023-03-03 10:35

금강유역환경청(청장 조희송)은 오는 3월 3일부터 3월 20일까지 관내 초‧중학교를 대상으로 환경오염도 측정실험과 현장체험 형 환경교육을 지원하는 `푸른 환경지킴이` 참가학교를 모집한다.푸른 환경지킴이는 미래세대 그린리더를 양성하고 청소년들의 올바른 환경보전의식 확립을 위해 금강유역환경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이다. 2008년도부터 현재까지 매년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환경교육 우수 프로그램이다.금강수계 지역 초등학교(4~6학년) 또는 중학교 환경동아리 15개교를 선발하여 운영하며,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춘 현장체험 형 교육을 통해 환경보전의 중요성과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 등을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금강수계 범위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 전역, 충북 6개 시․군(청주시,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진천군, 증평군)과 전북 3개군(장수군, 진안군, 무주군)이다.선정된 학교에는 매월 지도교사 활동비(15만원)와 함께 수질·대기질 오염도 측정기와 더불어 활동에 필요한 교구재 등을 지원한다. 현장으로 찾아가는 환경교육, 1박2일 환경캠프 운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제공될 예정이다.또한 한 해 동안 가장 우수한 활동을 펼친 4개 학교(동아리)에는 환경부 장관상·금강유역환경청장상과 함께 참여 학생 장학금 등 총 400만원을 포상할 예정이다.참가신청 방법은 금강유역환경청 누리집에서 참가신청서를 내려 받아 3월 20일까지 제출하면 된다. 3월 24일 금강청 누리집을 통해 최종 선발된 15개 학교 명단이 발표된다.조희송 금강유역환경청장은 “미래세대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의 환경 감수성을 높이고, 많은 학생들이 환경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양질의 환경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라고 밝혔다.

문화 | 송인승 기자 | 2023-03-03 10:34

저자 차경수출판사 서평연금, 아는 만큼 가져가는 가장 확실한 재테크‘100세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평균 수명이 크게 상승하면서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를 탐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연금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후 연금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준비하는 사람은 드문 편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금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연금 재테크’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이 책 『월급쟁이 연금부자가 쓴 연금이야기 2(개정판)』는 2020년에 출간된 『월급쟁이 연금부자가 쓴 연금이야기』의 전면 개정판으로서 2022년에 출간된 『월급쟁이 연금부자가 쓴 연금이야기2』가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새롭게 출간된 개정증보판이다. 차경수 저자는 네이버 블로그 ‘연금이야기’, 유튜브 ‘연금이야기TV’를 통해 자신의 공부와 경험, 실전을 통해 터득한 연금 재테크의 기본과 실전 가이드를 많은 이들과 나누면서 큰 호응을 받은 바 있으며, 이 책 『월급쟁이 연금부자가 쓴 연금이야기2(개정판)』은 ‘연금 재테크’에 관련된 차경수 저자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동시에 오랫동안 구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쌓인 실용적인 팁을 담고 있어 은퇴 후 연금 운용에 대한 실질적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이 책은 크게 연금적립, 연금운용, 연금수령, 연금 관련 세금 등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살면서 대부분 이용하게 되지만 정확히 알기는 힘들어하는 연금에 대한 기본 지식 및 나를 위한 현명한 연금 투자와 활용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주택연금, 기초연금, 유족연금 등 이미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문화 | 손혜철 | 2023-02-28 18:46

6트럭이 있는 공터를 향해 걸어갔다.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가는 동안 아버지는 숨이 차는지 몇 번이고 쉬었다.“트럭이 굴러가긴 해요?”“옆집에 사는 통장이 가끔 차를 쓰고 정비를 해둬서 엔진은 괜찮다. 후딱 다녀와서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도록 하자. 나 죽으면 그것들 모두가 짐 덩어리야.”아버지의 몸뚱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뼈만 남아 있어 옷이 헐렁했다. 아버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점퍼가 먼저 흐느적댔다. 아버지를 부축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버지와 날마다 으르렁댈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손을 한 번도 잡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몸을 부축한다는 게 어색했다.아버지가 나지막한 담벼락에 기대고 섰다. 그제야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부축했다. 아버지의 몸에서 아교 썩은 냄새가 날렸다. 딱딱한 아교를 물에 불려 중탕으로 녹여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용량을 많이 하다 보면 아교가 남았다. 그래서 창고에는 늘 부패한 아교 통이 굴러다녔다. 그 냄새가 아버지의 몸에 밴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이미 온몸으로 퍼진 암세포가 뿜어내고 있는 고약한 냄새였을 수도 있다.그런 아버지에게도 엄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들도 평생을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들의 아집 때문에 둘 사이는 늘 평행선을 달렸다. 할아버지 성화에 못 이겨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배우고 논어와 맹자까지 익혔다. 패철을 배우고, 풍수지리와 오행을 따져 손가락으로 육갑을 집는 방법을 익혔다. 하지만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듯이,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너무나 컸던 탓이었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단청 일을 배웠으니, 아버지는 주눅이 들어 어깨 한 번 쭉 펴지 못하고 늘 구부정한 자세로 살았다.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할아버지로부터 단청 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박 씨 아저씨도 함께 수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평생 아교를 녹이고 석채를 절구에 갈았다.할아버지가

문화 | 이경 | 2023-02-27 16:33

5인기척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새벽 다섯 시였다. 미닫이를 열고 주방이 딸린 방으로 들어서자, 쌀을 씻는 아버지의 거친 손이 눈에 들어왔다.“벌써 아침 준비를 하세요?”“흥덕사 금당에 문제가 생겼다는구나. 좀 전에 박 씨가 새벽 댓바람부터 전화를 해왔다.”“흥덕사 금당에요? 그 몸으로 어떻게?”“단청을 손 좀 봐야 하는데, 박 씨가 오방색 섞는 것만 도와달라고 해. 네가 집에 왔다고 했더니만, 같이 점심이나 먹자고 하더구나.”“아저씨는 건강하세요?”“그 사람도 예전만 못해. 우석이한테 단청기술을 전수하려고 아무리 닦달해도 말을 듣지 않아 포기했다. 돈도 안 되는 그 기술을 누가 받으려 하겠냐. 우석이가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다지? 전국 팔도를 돌며 돌을 구해와 정으로 돌려 깎는다는데 제법 비싼 가격을 쳐준다고 하드먼. 우암산에 작업실도 크게 지었다는구나.”우석이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무거워졌다.“아저씨한테 신세 진 것도 있고 할 말도 있어요. 같이 갈게요.”“밥 한 술을 얼른 뜨고 창고에 있는 칠통 가방을 채비하렴.”된장국에 몇 숟가락 밥을 말아 후루룩 들이켰다. 아버지는 좀처럼 식사를 하지 못했다. 병원에 들러 아버지의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우석이도 나처럼 수암골 전재미 마을에서 태어나고 함께 자랐다. 그는 젊은 현대 조각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전재미 마을의 자랑스러운 후예,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우석이는 외모가 잘생겼으며, 공부도 잘해서 동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수연이는 오로지 나에게만 마음을 열었다.곱고 예뻤던 수연이를 생각하며 나는 창고로 들어갔다. 달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오래된 아교 통에서 나는 냄새였다. 창고 안은 환기가 되지 않아 습했으며 어두컴컴했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흐릿하게 내부가 보였다. 아버

문화 | 이경 | 2023-02-27 16:30

에서 배우는 독서경영저자 : 이재운, 출판사 : 휴머니스트“조선 유일의 재테크 서적, 부자 되기를 권하다”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영조와 정조 시대의 지식인 이재운이 부(富)의 미덕을 찬양하고 당대의 거부(巨富) 9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누구나 부를 추구하는 것이 하늘이 준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생업에 기꺼이 뛰어들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벼슬보다 낫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고집하며 가난을 미덕으로 칭송하고 부유함을 악덕으로 비난하던 조선 양반사회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상을 펼쳤던 것이다. 욕망을 긍정하고 부자가 될 권리를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는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유일무이한 재테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책을 발굴하고 번역한 안대희 교수는 “변화가 무궁하며 붓끝이 굉장하고 빛이 나서 근세 100년 사이에 이런 작품이 없다”는 평이 자연스러울 만큼 주제와 문장이 잘 어우러지고 세련된 묘사와 다채로운 수사가 빛나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경제 주제를 넓고 깊은 식견으로 긴장감 넘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조선시대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는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다.이 책은 전체가 한 편의 글이다. 장과 절을 구분하지 않았고 소제목도 없다. 글은 크게 의론(議論)과 서사(敍事)로 구분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부의 축적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부분과 이를 입증하기 위해 아홉 명의 부자를 소개한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전체 구성과 논지 전개의 개략을 살피기 위해 작은 주제를 자세하게 항목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서론, 생업의 본질, 팔도 물산의 큰 줄거리, 분업, 빈부의 차이와 치부의 동기, 거부 열전 다섯 편, 팔도의 경제 지리와 물산, 생업의 선택, 재물의 노예 열 가지 사례, 행상과 거상의 비교, 정승과 거상의 비교, 안정 자산의 품목, 빈자의 굴욕, 치부의 방법, 시장과 환경의 에측 능력

문화 | 전형구 박사 | 2023-02-27 10:48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을 계승하는 보통 사람들,1790년 조선 22대 왕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권법 무예가 한밭에서 전통 문화로 233년 만에 환생했다.태권도문화원(원장 오노균, 전)충청대 교수, 대전시의회 의정 자문위원)이 태권도의 역사성, 고유성, 예술성을 발굴하면서 지난해부터 조선의 무혼 권법무예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생활무예로 대중화하고 있다.베이징의 공원에서 많은 시민들이 수련하는 태극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올해는 한국방문의 해다. 그리고 13년 만에 대전 0시축제가 부활 되고, 충청권 대표 축제인 세계금산인삼축제가 10월 개최된다. 2027년에는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세계대학경기대회)가 대전을 중심으로 충청권 4개 시도에서 공동 개최된다.이때 대전을 홍보하고 간판화 할 수 있는 문화상징으로 권법 무예를 선택하고 태권도문화원을 세웠다. 그 첫 사업으로 자격기본법에 의거 “권법무예”를 등록하고 시민들의 건강증진과 여가선용을 위해 본격적으로 생활무예를 보급하고 있다.권법무예는 택견처럼 부드러우나 강함이 있고, 태권도와 같이 강하나 부드러움이 있는 한국의 미가 녹아 있는 전통 무예 중의 무예다.대전에는 대한민국의 보물 동춘당과 노론의 거두인 우암 송시열의 강직한 직사상이 선비의 혼이 내려오고 있는 충절의 고장이다.권법무예는 은진 송씨 중시조인 송유 선생을 기리는 한옥 마을 쌍청당을 무예시연장으로 하고, 100여명의 멘손무사들이 “권법무예” 연무를 정례적으로 펼칠 예정이다.오원장은“태권도문화화원에서는 올 상반기 중 100여 명의 권법무예 지도자를 양성하여 대전을 알리는 홍보사절단으로 육성하겠다.”며 “국제무예올림피아드를 통해 해외에도 한국의 품격 있는 권법무예를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문화 | 오노균 체육정책 자문위원 | 2023-02-26 07:50

4반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른 덤불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마당에는 온통 잡초들로 무성했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봤다. 예전과 다름없는 일자형으로 된 구조의 집이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면 부엌이고 곧바로 큰방과 작은방이 연달아 붙어있다. 큰방과 작은방 사이는 미닫이문이었다.헛간과 변소가 마당 구석에 놓인 것은 최근 일이다. 전재미 마을은 집마다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있던 마을 공동변소를 사용했다. 지금은 변소 자리에 쉼터공간이 들어섰다.마을 공동변소의 구조는 간단했다. 구덩이를 깊게 파고 커다란 항아리를 묻어 굵은 나무판자를 가로세로 겹겹이 올려놓은 게 전부였다. 날씨가 좋은 날은 컴컴한 항아리 안이 훤히 보였다. 몸의 균형을 잃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자칫 구멍의 위치를 비껴가면, 첨벙 소리에 놀라 잽싸게 엉덩이를 쳐들어도 오물세례를 받았다.깊고 커다란 항아리 속, 벌레들이 앞다투어 꿈틀댔다. 꿈틀대는 벌레들은 서로의 몸체를 밟고 밖으로 기어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일단 항아리 밖으로 기어나와야만 변이와 변종을 거쳐 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미처 나오지 못한 구더기가 겹겹이 쌓였다가 어두컴컴한 밑바닥을 나뒹굴었다. 전투라도 하듯이 항아리 위로 오르기 위한 행렬은 겨울이 오기까지 계속되었다. 그곳에서 쉼 없이 뿜어져 나오는 구린내는 변소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옷 속까지 침투했다. 그래서 오만상을 찌푸린 얼굴로 서커스를 하듯 조심스럽게 허리춤을 풀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볼일을 봤다.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공동변소 벽에 춘화를 그려놓았다. 미리 준비한 연필과 크레용으로 벌러덩 누워 있는 남녀의 모습에 뚝 불거져 나온 남자의 성기와 검은 풀숲에 은밀하게 형체를 드러낸 여자의 생식기를 그려놓은 것이었다. 정말 남자와 여자의 성기가 그렇게 생겼을까? 날마다 그런 호기심이 들었다. 서툰 춘화였지만, 어린아이들의 눈을 몹시 자극했다. 여자의 성기와 남자의 성기가 삐뚤빼뚤한 문자 속에 뒤엉켜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 | 이경 | 2023-02-23 15:10

저자 홍경석출판사 서평포기하지 않으면 웃을 날은 반드시 온다인생은 희로애락의 연속으로 흔히 표현된다. 누구의 인생이든 공평하게 기쁨과 행복이 있으면 고통과 슬픔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양상은 사람마다 같지 않아서, 다른 이보다 유달리 더 많은 시련과 역경, 고난을 경험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누구나 때때로 자신을 덮쳐 오는 역경과 고난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과 고통에 빠지기도 하지만, 남들보다 더욱 커다란 역경과 고난을 견뎌내고 승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삶을 좀 더 담대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이 책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는 어머니 품에서 한참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 때부터 사실상의 소년가장으로서 아버지를 부양하며 남들과는 다소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가정을 위해, 아내를 위해 이 악물고 세상과 맞서 싸워온 ‘홍키호테’ 홍경석 저자의 ‘인생 2막’에 이르러 어려웠던 과거와 현재의 행복,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 ‘시민기자’로서 세상 돌아가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분석 등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한참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며 순수하게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어머니의 온기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가정을 부양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던 아버지를 모시며 구두닦이, 신문팔이, 행상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생존해야만 했던 홍경석 저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가난에 지쳐 세상을 원망하며 거칠게 반항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헌신적인 아내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후 두 딸을 사교육 한 번 없이 명문대에 보내며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낸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면서 독자들에게 그 어떤 고통과 역경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을 전달해 주고 있다. 또한 저자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는 따뜻하고 공감 넘치는 위로를, 젊은 세

문화 | 손혜철 | 2023-02-23 13:32

독립선언서 원본 32점 자료 공개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2월 27일 오전 10시 30분, 밝은누리관에서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특별 자료 공개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서는 3·1운동 시기 국내외에서 제작·배포되었고 그동안 실물이 공개되지 않았던 독립선언서류 원본 총 32점을 공개한다.자료공개 행사 개요〇 일 시 : 2023. 2. 27.(월) 오전 10시 30분〇 장 소 :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 강의실〇 공개자료 : 2·8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영문독립선언서, 하동독립선언서,3·1절 기념선언문 등이번에 공개되는 독립선언서류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첫번째 주요 자료는 전남 목포, 경남 통영·하동, 평북 철산 등지에서 발견된 3·1 독립선언서들이다.3·1운동 당시 국내에서 다양한 독립선언서가 배포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지만 실물로 남아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행사에서는 3·1운동 당시 제작된 다양한 독립선언서와 격문들 가운데 보존되어 있는 원본자료를 공개함으로써 각 지방에서도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배포했음을 보여준다.1983년 2월 정명여중 교실 보수작업 중 천장에서 발견된 2·8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는 당시 영흥학교 교장 다니엘 커밍(Daniel J. Cumming, 김아각)에게 전달된 봉투 속에 담겨 있었다. 평안북도 철산에서 발견된 독립선언서는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 정석해(鄭錫海)가 보낸 것으로, 학교 등사판으로 등사한 독립선언서이다. 뒷면에는 철산에서의 봉기를 촉구하는 글이 적혀 있다. 경남 하동에서 발견된 독립선언서는 대한독립선언서와 3·1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참조하여 작성되었고 하동 만세시위를 주도한 박치화 등 12인의 대표자 명의로 된 선언서이다.두번째 주요 자료들은 미주 대한인국민회가 보관했던 독립선언서로 국내 및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배포된

문화 | 손혜철 | 2023-02-23 10:47

지난 13일 (화) 11시 (사)국제무예올림피아드(총재 오노균, 이하 IMAO)연수원에서 세계합기도 무도연맹(총재 촤돈오 이하 WHU)가 양측 실무자들(이기한 IMAO사무관, 김운용 기술심의위 의장)이 배석한 가운데 "금산 무예올림피아드"종목별 개최 및 상호협력과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사) 세계 합기도 무도연맹은 1986년 최 총재에 의해 창립돼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세계 58개국에서 약 145,000명이 합기도무예를 수련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경찰청 가산점 인정단체다. 남아공화국에 브라즈메 회장, 인도네시아 요욕 회장 등이 해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고 서울에 국제본부들 둔 글로벌 무예조직이다.한편, 국제 무예올림피아드(IMAO)는 전 세계 20세 이하의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겨루는 국제전시행사로 1998년 충청대학 "세계청소년태권도문화축제"에서 오노균 교수가 국제태권도 아카데미로 시작했다. 올림피아드는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IMO), 국제 정보 올림피아드(IOI),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IPhO), 국제 화학 올림피아드(IChO),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IBO), 국제 천문 올림피아드( IAO)등이 매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다.한편 오 총재는 1998년 충청대학교 교수로 재직시 '세계청소년태권도문화관광축제'를 창안, 매년 개최하며 태권도와 한국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초석을 다졌고 이후 한국의 각 지자체에서 서로 벤치마킹하여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업적을 남겼다. 결국 한국 정부는 '세계청소년태권도문화관광축제'를 국가 8대 축제로 지정한 바 있다.이날 업무협약을 체결한 사단법인 세계합기도무도연맹 최돈오 총재는 국기원 태권도 공인 9단으로 재단법인 중앙체육원 이사장, 충청대학 객원 교수, 서강대학교 무도사범, 세계청소 년태권도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부단장, 아시아청소년태권도품새 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단장 등으로 활약하고 대통령표창을 받았다.이번 업무협약(MOU)으로 양기관은 세계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발

문화 | 오노균 체육정책 자문위원 | 2023-02-22 16:24

3경주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단청을 그릴 때였다. 우석이가 나를 찾아왔다. 그와 불국사를 함께 둘러보고 보문단지에서 식사한 후, 강미의 노래방에서 불콰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노래를 불렀다. 함께 일하던 단청쟁이들과 몇 번 놀았던 적이 있어 그녀와는 이미 안면을 튼 사이였다. 우석이와 두 시간이나 노래를 불렀는데도 그녀가 서비스를 계속 넣는 바람에 세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러는 동안, 어쩌고저쩌고한 추억이 담긴 노래를 부르며, 객기가 가득 찬 목소리로 심장이 터질 듯 소리를 내질렀다. 한참을 신나게 노래를 부르자 힘이 빠진 우석이와 나는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다 전재미 마을에서 살았던 옛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수연이가 왜 전재미 마을을 떠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이젠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고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그녀를 꼭 만나 그 이유를 들어는 봐야겠다.’대충 그런 이야기를 하소연하듯 우석이에게 쏟아냈다.노래방 기계의 화면에는 장미꽃이 가득 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우석이가 침통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뭣 하는 짓이야?’깜짝 놀란 나는 우석이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네가 군대 가고, 눈에 뭐가 씌웠던지 수연이랑 딱 한 번 잤다. 두고두고 너한테 미안했고, 더는 숨길 수가 없어서 고백하는 거야.’‘뭐라고? 다시 말해봐!’내가 군대 입대를 하고 며칠 후 수연이와 밤새워 술을 먹었고, 우는 수연이를 달래다가 그만 몸을 섞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수연이가 말없이 전재미 마을을 떠났다는 것이다. 우석이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수연이가 도망치듯 전재미 마을을 떠난 것은 모두 우석이 그놈 때문이었다. 모든 이야기의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다. 나와 미래를 약속했던 그녀였다. 결코 나를 배신할 그럴 애가 아니었다. 우석이를

문화 | 이경 | 2023-02-22 12:26

2내 이름은 고세형이다. 한학에 밝았다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생전에 할아버지는 이름 짓고, 이삿날을 잡고, 한문으로 된 공문서 읽는데 막힘이 없던 탓에 선비 소리를 들었다.내가 열 살 무렵, 할아버지는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심체요절이란 책을 해석하고 자료 수집을 하는 일에 동참했다. 그만큼 할아버지는 직지와 밀접했다. 흥덕사지 발굴에 참여한 덕분에 공로자 명단 속에 이름 석 자가 들어갔다. 그런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가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은 분명했다.훗날에서야 고세형의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세형이란 한자의 뜻이 어떤 의미였는지 말이다. 풍수지리와 토정비결을 훤히 꿰고 있던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의 이삿날을 잡아주다가 우연히 세형을 발견했고, 손자의 이름으로 올렸다.‘세형신 방향이 들면 농사를 짓지 않고, 사업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신이 편안하고 평생 놀고먹는다.’참 그럴듯한 해석이다.할아버지는 그 뜻이 몹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손자만큼은 전쟁과 배고픔을 겪지 않고, 빈둥대며 한평생 편히 살기를 바란 마음에서 팔장신 여덟 방위 세형신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대장군 방은 팔장신이 관장하는 여덟 방위에 속한다. 팔장신을 모시는 사람을 음양가라 불렀다. 음양가는 천문, 역수, 풍수지리에 능했던 예언자로 알려졌다. 그들은 태세, 대장군, 태음, 세형, 세파, 세살, 황번, 표미를 신들의 방향으로 여겼다. 신들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방향에 따라 금기 사항이 뒤따라 다녔기에 방위표 패철의 위력은 사람의 목숨을 쥐락펴락했다. 당시 할아버지의 위치는 마을의 촌장급은 되었다.도교에 심취했던 할아버지는 전재미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패철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패철은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도구였다. 밤늦게 찾아오는 이웃이 있으면 언제든 팔장신이 관장하는 여덟 방위를 통해 집안 대소사를 살폈다.쾌가 잘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패철을 들여다봤다. 동그란 모양의 중심부에는 나침반이 있었고, 주변부에

문화 | 이경 | 2023-02-22 11:19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3월 1일(수), ‘제104주년 삼일절 기념행사’를 개최한다.‘온 국민이 참여하고 기념하는 삼일절’을 테마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당일 오전 10시부터 ▲온라인 사전 모집한 100가족이 참석하는 독립기념관 삼일절 기념식을 시작으로 ▲대국민 신청을 통해 모인 명예 독립운동가 1,919명이 참여하는 ‘3‧1만세운동 재현행사’가 겨레의큰마당에서 12시부터 펼쳐진다. 이어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공연 ▲유튜브채널 ‘웃는아이’팀의 합창 및 뮤지컬 ▲육군 의장대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더불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광복 후 귀국시 탔던 ‘C-47 수송비행기’ 탑승체험 ▲태극기 주제의 특별 전시해설 ▲광복군 의상체험 ▲통일염원의 동산 타종체험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등 독립운동 테마의 체험행사도 진행된다.특별기획전 ‘상자 속 모두의 보물’도 개최된다. 최근 3년간 기증된 주요자료 70점을 특별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주요 전시자료는 한말 유학자로서 의병운동을 전개한 곽한소(郭漢紹, 1882~1927)가 스승 최익현의 순국부터 장례까지의 과정을 담은 『면암선생 대마도 반구일기(勉菴先生對馬島返柩日記)』(곽노권 기증), 이상재(李商在, 1850~1927)가 한성감옥에서 운영한 도서실의 대출 장부인 『한성감옥 도서대출대장』(이공규 기증),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등을 지낸 지청천(池靑天, 1888~1957)이 광복 이후 집필한 친필일기(이준식 기증) 등이다.삼일절을 맞아 제4전시관 ‘평화누리’에서는 실감형 영상콘텐츠 ‘평화의 울림’도 최초 공개된다. 무궁화, 호랑이, 빛을 모티브로 천장과 바닥까지 이어지는 4면 프로젝션 맵핑 기반 인터랙티브 영상 콘텐츠를 통해 모두가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한시준 독립기념관 관장은 “국민들이 참여하고

문화 | 손혜철 | 2023-02-22 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