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첫 산문집 출간한 이은봉 시인!
[인터뷰]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첫 산문집 출간한 이은봉 시인!
  • 이경
  • 승인 2022.09.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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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 시인이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첫 산문집을 지난 8월에 도서출판 ‘천년의 시작’에서 출간해 주목을 받고 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秋分)이다. 우렛소리도 멈추고 벌레 소리도 숨는다는 절기에 밤새워 읽어본『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의 모든 글은 독자의 오감을 일깨우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사랑의 화살촉을 글 속에 숨겨뒀다가, 독자들의 가슴에 적당한 깊이로 쏴주는 넓은 아량을 베풀고 있다. 그 고통을 모두 독자의 몫으로 남겨뒀으니, 산문집 또한 읽을거리가 풍성했다.

첫 산문집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는 이은봉 시인의 일대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글이기에, 무엇보다 동시대를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치유를 가능케 한 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은봉 시인이 소년기와 청년기를 겪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들과 중년기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저마다의 인생에 빛과 그림자를 교묘하게 얽혀 놓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각각의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있는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마치 장편소설을 읽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현재 노년기에 이른 시인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지혜와 회화적이면서도 평화롭기까지 한 일상에 깊은 철학을 품고자 노력하고 있다. 더구나 독자들이 천천히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며, 장소와 날짜까지도 세세히 기록해 뒀다.

이번에 출간한 산문집은 1984년부터 2021년까지 시인의 무려 36년 동안의 사랑과 문학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일화를 담고 있다.

시인의 나이가 20대 무렵에, 대전으로 피난을 온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에서 같이 하숙집에서 살았던 상영이와 지숙이가 버드나무 여인숙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의 글이 바로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였다.

이런 소제목으로 책의 이름을 내건 이유를 시인은 본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시가 소외받는 것들,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들, 버려진 것들에 대한 연민 없이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시의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라며 당시에 느꼈던 아픔을 글로 대신하여 표현하고 있다.

이은봉 시인은 『삶의문학』 제5호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1983)를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1984)에 「좋은 세상」 외 6편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봄바람, 은여우』 『생활』 『걸어 다니는 별』 등 12권, 평론집 『시와 깨달음의 형식』 『시의 깊이, 정신의 깊이』 등 5권, 시선집 『초식동물의 피』 『초록잎새들』 등 4권, 시론집 『화두 또는 호기심』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 등을 출간한 바 있다.

수상경력을 보면, 한성기문학상(2005), 유심작품상(2006), 한남문인상(2007), 충남시인협회 본상(2011), 카톨릭문학상(2012), 질마재문학상(2014), 송수권시문학상(2016), 시와시학상(2017), 자랑스러운 한남인 상(2017), 김달진문학상(2021) 수상, 제8회 풀꽃문학상(2021) 수상했다.

또한 이은봉 시인은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부이사장, 충남시인협회 회장 등 역임했으며, 문예지 『삶의문학』 『문학과비평』 『시와상상』 『시와사람』 『불교문예』 『시와인식』 『시와시』 『시와표현』 등의 발간에 앞장서 왔다.

현재, 광주대학교 명예교수, 대전문학관 관장, 국립한국문학관 이사, 세종마루시낭독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오늘은 광주대학교 명예교수, 대전문학관 관장, 국립한국문학관 이사, 세종마루시낭독회 회장을 역임하고 계신,이은봉 대전문학관 관장님을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질문1] 이은봉 시인께서 이번에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첫 산문집 출간했는데,산문집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는지요?

지나온 나의 삶을 돌이켜보니, 한마디로 모든 게 시의 마음이요 사랑의 마음이었어요.

산문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1980년대 초, 봉제 공장 부설학교에서 국어 선생을 잠깐 했던 적이 있는데, 가난하고 병약한 여공들을 가르쳤던 일입니다.

지옥 같은 공장에서 재봉틀을 밟거나, 다리미질하던 여공들이 연장 근무와 야근을 해 몸이 성할 리가 없었죠. 그때 만났던 제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끝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여공들도 있었고, 졸업해서 대학 진학을 했던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들도 이제 나처럼 나이 많이 먹었겠죠. 어쩌면 며느리와 사위를 봤을지 몰라요. 나보다 2살 아래인 여학생도 있었으니까요.

[질문2] 이번에 출간된 산문집에서 ‘삶의 문학과 대성다방’이란 글을 읽어봤는데, 당시 시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의 문학 활동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대전에서 대학을 입학하고, 문학단체 ‘여명’에 발걸음을 하면서 시작됐어요. 대학에 김현승 교수님이 계셨고, 박용남 선배가 있었죠. 대전역 앞 2층 대성다방이 아지트였는데, 당시 ‘삶의 문학’ 동인 열댓 명이 모여 문학과 사회의 부조리에 열변을 토하며 현실 비판을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어요.

박용남 선배를 비롯해 김영호, 이은식, 김종관, 조만형, 윤중호, 전인순, 조기호, 전무용, 강병철, 김미영 등 많은 문우들과 1980대의 암울한 격동의 세월을 보냈어요. 다들 혈기가 왕성했으니 겁날 게 없었지요.

[질문3] 산문집에는 고향 집에 관련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향 집에 관련해 추억을 이야기 해주세요.

저는 충남 공주군 장기면 당암리 245번지 막은골(杜谷)에서 아버지 이주하(李柱夏), 어머니 윤종기(尹鍾基)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어요.

지금은 이 지역 일대가 모두 세종특별자치시 다정동으로 바뀌었어요. 초등학교 교사를 봉직하고 있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늘 떠돌아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저는 친구들과 정들만 하면 헤어져야 했어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이제 흔적이 거의 사라지고 없어요. 그래서 늘 가슴이 아프답니다.

저는 시집 제목을 정해놓고 쓰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넣고 다닌 지 오래된 것이 하나가 있어요. ‘대통다리에서 우체국다리 사이’입니다. 실제로 공주의 옛 도심을 흐르는 제민천 위에 놓여 있던 작은 다리입니다.

제가 중학교를 이 대통다리 바로 위에 있던 중앙식당 그 집에서 하숙했는데, 딸이 무려 열 명이나 되었어요. 그 하숙집 연화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와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나는 그녀에게 보낼 편지를 잘 쓰기 위해서 시집과 소설집 심지어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을 열심히 읽었어요. 그때의 독서가 자양분이 되어 오늘날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 4] 요즘 힐링을 하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공주시 인근 월산리에 만든 부채밭이 가장 큰 휴식처가 되고 있습니다. 광주대학교에서 25년을 근무했는데, 2018년에 퇴직하자마자 월산리 1구 병풍골에 아내와 작은 농막을 하나 지었어요. 농막의 이름은 월산재입니다. 도시락을 준비해 월산재에 들어가 쉬거나, 근교의 산을 걷거나 하면서 못다 쓴 글을 촘촘히 엮는 방법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연용흠 소설가와 바다낚시를 가는 겁니다. 그 친구와는 같은 시대의 아픔을 겪은 동년배라 그런지 먼 이야기와 앞으로 겪게 될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질문 5] 대전문학관 관장을 맡게 되면서 기억에 남는 활동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9년 10월 16일에 대전문학관 관장으로 임명되어, 대전문학인들의 계보를 정리해나가고 있습니다. 내년 10월이면 임기가 끝납니다.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동전과 지폐를 모았어요. 또한 고향 집에는 커다란 새장과 수석이 많았는데, 골칫거리가 될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 했으니, 아버지의 취미가 남달랐어요.

저는 아버지와 달리 책을 모으는 버릇이 있었는데, 시집과 소설집 그리고 평론집은 물론 매달 수십 권씩 배달되는 문예지조차 버리지 못했어요. 아내와 아이들이 사는 서울집, 어머니가 사시는 대전집, 그리고 광주 주산집 그리고 대학 연구실에도 상당한 책들이 쌓여 있었어요.

광주대학교를 퇴직하면서 책을 기증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책이 많아 그냥 폐지 더미에 버리기도 했어요. 그나마 귀중한 책은 대전문학관 상설 전시장에 기증했는데, 그동안 책 수집광으로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대전문학관에 송백헌 선생님이 아주 귀한 책을 기증하셨습니다. 산문집에도 나와 있듯이, 송백헌 선생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백석 시인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시집 『사슴』,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 (김억), 최초의 번안 소설집 『해왕성』 (이상협),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이인직) 등을 기증했는데, 사람들은 송백헌 선생님을 두고 ‘대전문학관 할아버지’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 외에도 이재복, 송재영, 홍희표, 변재열, 박헌오, 강태근, 박진용 등 많은 선생님이 책을 기증해주셨어요. 제가 관장으로 있는 동안 근대문학 초기의 자료들이 3만 권 넘게 수장이 되었어요. 이들 중에는 옥션에서 일억 원이 넘을 만큼 고가에 거래된 책들도 있답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기증해주신 문헌 자료를 잘 알 수 있게 수집 코너와 체험전시 코너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상으로 이은봉 대전문학관 관장님과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은봉 선생님의 산문집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출간을 축하드리며, 긴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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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흥 / 불교공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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